원의 관제에 의하면 각 행성마다 모두 두었으며, 그 구성은 제거(提擧, 종5품) 1인, 부제거(副提擧, 종7품) 1인, 이목(吏目) 1인, 사사(司史) 2인과 이 밖에 유학교수(儒學敎授, 9품) 1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려에는 1289년(충렬왕 15)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원의 다른 행성들보다 20여년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좌부승지로서 정동행성좌우사도사(征東行省左右司都事)를 겸하고 있던 안향(安珦)이 최초로 유학제거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도 고려의 명망 있는 문신으로써 충원되었는데, 충렬왕 때의 정해(鄭瑎)·최백륜(崔伯倫), 충숙왕 때의 왕삼석(王三錫), 공민왕 때의 이색(李穡)·정오(鄭䫨) 등이다. 또한, 충숙왕 때에는 홍양파(洪陽波)·노백경(盧伯敬)·정사겸(鄭思謙)·백운빈(白雲賓) 등 중국의 유학자들이 유학교수로서 고려에 와 고려의 문신들과 교유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 기능은 다른 행성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제사·교양·전량(錢粮)·저술 등의 일을 관장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1313년(충선왕 5) 원나라에서 과거를 실시하면서부터는 원의 회시(會試)에 응시하기 위한 예비시험으로서의 향시를 주관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정책으로 정동행성 이문소(理問所)가 혁파되고 곧이어 정동행성이 폐지되었다가 1361년에 복치(復置)되는 등 혼란 속에서도 폐지되지 않고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