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인 ()

유교
인물
조선후기 정언, 단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여옥(汝玉)
도암(陶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1년(영조 17)
사망 연도
1806년(순조 6)
본관
기계(杞溪)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단성현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정언, 단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옥(汝玉), 호는 도암(陶庵). 아버지는 진사 유언익(兪彦益)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4년(영조 5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88년(정조 12) 정언이 되었다. 1804년(순조 4) 외직인 단성현감으로 나가 민막(民瘼)을 제거하고 기민(饑民)을 구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그 고을 백성들이 뒤에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유한인은 인품이 청간(淸簡), 엄정(嚴正)하였으며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일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또한, 여가에는 경의(經義)를 강론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쓰는 한편, 청담(淸淡)한 시취(詩趣)로 시영(詩詠)을 즐기기도 하였다.

1806년 휴가를 얻어 고향에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죽었으며, 왕이 예관을 보내어 사제(賜祭)하였다. 1810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듬 해에 모현사(慕賢祠)를 사액받아 그곳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도암실기(陶庵實紀)』
집필자
이민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