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옥(汝玉), 호는 도암(陶庵). 아버지는 진사 유언익(兪彦益)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4년(영조 5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88년(정조 12) 정언이 되었다. 1804년(순조 4) 외직인 단성현감으로 나가 민막(民瘼)을 제거하고 기민(饑民)을 구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그 고을 백성들이 뒤에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유한인은 인품이 청간(淸簡), 엄정(嚴正)하였으며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일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또한, 여가에는 경의(經義)를 강론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쓰는 한편, 청담(淸淡)한 시취(詩趣)로 시영(詩詠)을 즐기기도 하였다.
1806년 휴가를 얻어 고향에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죽었으며, 왕이 예관을 보내어 사제(賜祭)하였다. 1810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듬 해에 모현사(慕賢祠)를 사액받아 그곳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