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회(公晦), 호는 호고와(好古窩). 아버지는 통덕랑 유만휴(柳萬休)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현동(金顯東)의 딸이다. 유장원(柳長源)의 문인이다.
1821년에 유장원이 지은 『예서통고(禮書通攷)』와 고조부 유정원(柳正源)의 『역해참고(易解參攷)』를 교정하였다. 1830년에 후릉참봉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2년 뒤에 장릉참봉이 제수되었으나 이미 죽은 뒤였다.
일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바쳤으며 남한호(南漢皓) · 조승수(趙承粹) · 유식(柳栻) · 이병운(李秉運) · 이병원(李秉遠) · 유건휴(柳健休) · 유정문(柳鼎文) · 유치명(柳致明)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고산서당(高山書堂)을 비롯하여 여강(廬江) · 구계(龜溪) · 황산(黃山) · 고운(孤雲) 등 여러 서당에서 후진을 교육하였다. 경서와 제자서에 두루 밝았고, 많은 저술을 하였다.
『호고와문집(好古窩文集)』 · 『주역경전통편(周易經傳通編)』 · 『계몽통해(啓蒙通解)』 · 『계몽익요(啓蒙翼要)』 · 『계몽고의(啓蒙攷疑)』 · 『근사보록(近思補錄)』 · 『근사후편(近思後編)』 · 『근사집해산보(近思集解刪補)』 · 『가례고증(家禮攷證)』 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