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례의집 ()

육례의집
육례의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 학자 박세채가 육례에 관한 의례적 의심과 쟁점을 정리한 예서.
문헌/고서
저자
박세채(朴世采)
편자
박세채(朴世采)
편저자
박세채(朴世采)
권책수
33권 14책
권수제
육례의집권지일전집(六禮疑輯卷之一前集)
판본
목판본
표제
육례의집(六禮疑輯)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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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육례의집』은 조선 후기 학자 박세채가 육례에 관한 의례적 의심과 쟁점을 정리한 예서이다. 33권 14책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으며, 17세기 이후 여러 번 간행되었다. 박세채는 예송 논쟁으로 분열된 남인·노론·소론의 예설을 정리하고자 이 책을 편찬했으며, 주희의 『의례경전통해』를 기본으로 하여 고금의 예서들을 참조하고 전집·후집·별집으로 구성하였다. 각 권은 관례, 혼례, 상례, 제례, 향례, 상견례, 잡례 등으로 구분되며, 구체적인 예제와 그 논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의
조선 후기, 학자 박세채가 육례에 관한 의례적 의심과 쟁점을 정리한 예서.
저자 및 편자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 · 남계(南溪), 이다.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박의(朴猗)이며, 어머니는 신흠(申欽)의 딸이다. 명문 세족 출신으로, 증조부 박응복(朴應福)은 대사헌, 할아버지 박동량(朴東亮)은 형조판서를 지냈다. 대표 저술로는 『육례의집(六禮疑輯)』 외에 『범학전편(範學全編)』, 『남계예설(南溪禮說)』, 『삼례의(三禮儀)』 등 다수가 있다.

서지사항

『육례의집』은 총 33권 14책의 목판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으며, 17세기 이후 여러 번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박세채는 모든 예(禮) 가운데 관혼상제의 사례(四禮) 및 향례와 사상견례 등 육례(六禮)가 가장 절실하고 실행하기 쉽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의심나는 의절을 상고하여 정론(定論)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예서를 지은 근본적인 이유는 예송(禮訟)으로 분열된 남인노론 및 노론과 소론의 예설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구성과 내용

「육례의집범례(六禮疑輯凡例)」에 따르면, 『육례의집』은 주희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를 기본으로 하되, 고례(古禮)로는 『의례』를, 금례(今禮)로는 『가례(家禮)』를 참고하였다. 또 두우(杜佑)의 『통전(通典)』과 정구(鄭逑)의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을 근거로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그리고 별집(別集)으로 구분하였다.

권1은 관례(冠禮)[공조례(公朝禮)]로 관혼총론(冠昏總論)에서 상관(喪冠)까지, 혼례(昏禮)로 천자납비후(天子納妃后)에서 취동성(娶同姓)까지, 상례(喪禮)로 상총론(喪總論)에서 책례길복(冊禮吉服)까지가 실려 있다. 권2는 상례로 사우선생(祠宇先生)에서 군상복(君喪服)까지가 실려 있다. 권3은 상례로 행삼년(行三年)에서 계통집상(繼統執喪)이 실려 있다. 권4는 상례로 천자제후위제친복(天子諸侯爲諸親服)[황태후황후황태자복부(皇太后皇后皇太子服附)]가 실려 있다.

권5는 상례로 논거상길례(論居喪吉禮)에서 탈정(奪情)까지가 실려 있다. 권6은 상례로 시법(諡法)에서 비(碑)까지가, 제례로 제총론(祭總論)이 실려 있다. 권7은 제례로 천지지제(天地之祭)에서 기우(祈雨)까지 실려 있다. 권8은 제례로 우(雩)에서 음사(淫祀)까지 실려 있다. 권9는 제례로 성현(聖賢)에서 제기(祭器)까지 실려 있다. 권10은 제례로 종묘(宗廟)에서 황태자급황자묘(皇太子及皇子廟)까지 실려 있다.

권11은 제례로 천자황후급제후신주(天子皇后及諸侯神主)에서 조(祧)까지 실려 있다. 권12는 제례로 체협(禘祫)이 실려 있다. 권13은 제례로 추왕(追王)에서 공자이종(公子二宗)까지, 향례로 향음주(鄕飮酒)와 천자제후향사(天子諸侯鄕射)가 실려 있다. 권14는 상견례(相見禮)로 천자상공급제후향대부사등지(天子上公及諸侯鄕大夫士等贄)에서 거관귀양부모(居官歸養父母)까지 실려 있다. 권15는 잡례(雜禮)로 천자지례(天子之禮)에서 궁실(宮室)까지 실려 있다.

의의 및 평가

남인과 노론 및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정쟁의 수단이 되었던 예설을 정리하여 후인을 경계시키고자 작성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이언적『봉선잡의』, 이황의 『상제례답문』, 정구의 『오선생예설』, 이이『격몽요결』, 김장생『의례문해』 등 남인과 노론의 예설을 종합하여 관혼상제 및 향례와 사상견례 등 사대부의 의절 및 향례와 왕조례에 대한 정론을 마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가례요해(家禮要解)』
『남계예설(南溪禮說)』
『남계집(南溪集)』
『사례변절(四禮變節)』
『삼례의(三禮儀)』
『육례의집(六禮疑輯)』

논문

고영진, 「16세기~17세기 예학의 지역적 분화과정과 그 특징」(『국학연구』 13, 한국국학진흥원, 2008)
김현수, 「17세기 조선의 예교사상 연구: 송시열·윤휴·박세체를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6)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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