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다음날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다대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다대첨사 윤흥신은 동생 흥제(興悌)와 군관민을 이끌고 막강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 동래부와 부산진에서 순절한 이들은 포상을 받고 단과 사묘(祠廟)도 세워졌으나, 다대진만은 임진왜란 때의 사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761년(영조 37)에 경상감사 조엄(趙曮)이 윤흥신의 사적을 입수하여 포상을 청함으로써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1765년(영조 41) 다대첨사 이해문(李海文)이 윤흥신이 순절하였다는 다대객관(多大客館)의 동쪽에 윤공단을 세우고, 4월 15일 향사를 지냈다. 원래 이 단은 다대성 안에 있었던 것을 1970년 1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단 중앙의 비석은 전면에 ‘첨사윤공흥신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라 쓰여 있고, 이면에 공의 전적이 기재되어 있다. 비는 대석을 두고 비신을 세운 다음 위에 가첨석을 얹었다. 비 좌우측에는 윤공의 동생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와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들은 가첨석을 사용하지 않았고, '첨사윤공흥신순절비'에 비해 작은 규모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