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단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자연유산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 관련 제단. 석단.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부산 윤공단 전경 미디어 정보

부산 윤공단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 관련 제단. 석단.

내용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다음날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다대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다대첨사 윤흥신은 동생 흥제(興悌)와 군관민을 이끌고 막강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 동래부와 부산진에서 순절한 이들은 포상을 받고 단과 사묘(祠廟)도 세워졌으나, 다대진만은 임진왜란 때의 사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761년(영조 37)에 경상감사 조엄(趙曮)이 윤흥신의 사적을 입수하여 포상을 청함으로써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1765년(영조 41) 다대첨사 이해문(李海文)이 윤흥신이 순절하였다는 다대객관(多大客館)의 동쪽에 윤공단을 세우고, 4월 15일 향사를 지냈다. 원래 이 단은 다대성 안에 있었던 것을 1970년 1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단 중앙의 비석은 전면에 ‘첨사윤공흥신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라 쓰여 있고, 이면에 공의 전적이 기재되어 있다. 비는 대석을 두고 비신을 세운 다음 위에 가첨석을 얹었다. 비 좌우측에는 윤공의 동생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와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들은 가첨석을 사용하지 않았고, '첨사윤공흥신순절비'에 비해 작은 규모로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 - 『동래부지(東萊府誌)』

  • - 『충렬사지(忠烈祠志)』

  • - 『부산의 문화재』(부산광역시, 199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