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1400년(정종 2) 전중군장군(前中軍將軍) 때, 이방간(李芳幹)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공으로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그 해 4월에 이무(李茂)의 추천으로 지합주사(知陜州使)로 임명되었으나 불만을 품고 임지로 떠났다. 임지인 합주에서 몽계사(夢溪寺)의 백종법회를 금지시키고 많은 양곡을 빼앗아버린 죄로 탄핵을 받았다. 1403년 태종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원평군(原平君)으로 봉작되었다.
1405년 9월에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왔고, 1407년에 평양부윤이 되었다. 1409년 9월에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갔다왔다. 그 해 10월에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옥사에 관련되어 사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