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 예술·체육
  • 인물
일제강점기 여성 성악가. 배우.
이칭
  • 수선(水仙)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26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897년
  • 출생지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민영 (단국대학교, 연극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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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여성 성악가. 배우.

내용

1897∼1926. 호는 수선(水仙)이며 평양 출생.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았다.

1921년 동우회(同友會)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金祐鎭)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22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조교생활 1년을 마친 뒤, 1923년 6월 귀국하자마자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성악가로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 또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정통음악을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사생활과 함께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세미클래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였다. 한때 극단 토월회 주역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나 연기력이 없어서 실패하였다.

대형 오페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 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무 낙후했고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 견디게 하였다.

특히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1926년 여동생 윤성덕(尹聖悳)의 유학길 배웅을 위하여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정사하였다.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참고문헌

  • - 『사(死)의 찬미(讚美)-윤심덕평전-』(유민영, 민성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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