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시화(金時化). 경상남도 밀양 출신. 국운이 기울자 안곽(安郭)·이각(李覺)·황상규(黃尙奎)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일합사(一合社)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던 중 1919년 2월 고종이 죽자, 인산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와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에 참석하였다.
여기에서 얻은 독립선언서를 밀양으로 가져가 밀양의 장날인 3월 13일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받자 윤세주(尹世胄)와 더불어 만주길림(吉林)으로 망명, 의열단조직에 참가하여 의열단 결사대원이 되었으며, 일제는 궐석재판을 통하여 징역 6월을 언도하였다.
의열단의 대일투쟁이 본격화함에 따라 1920년 귀국하여 의열단에 의한 이른바 밀양폭탄사건에 가담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잡혀 1921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언도받았다. 옥고를 치른 뒤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