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의 북쪽 8㎞ 가량의 해안 가까이에 있는데 북부면 금산포(金山浦)와 이도면 고현리에서 서해리에 이르는 13㎞ 길이에 걸쳐 있다.
조선계(朝鮮系) 석회암이 교대작용(交代作用)을 받아서 갈철광(褐鐵鑛)·적철광(赤鐵鑛)이 생성된 것인데 치밀한 입상(粒狀 : 알맹이 모양)을 이루고, 때로 미세한 인편상(鱗片狀 : 비늘조각모양)의 적철광이 섞이며 침철광(針鐵鑛) 및 중정석(重晶石)과 혼존하는 경우도 있다.
철광의 품위는 55∼58%로 부광을 이루며, 지표 가까이에 부존하고 있으므로 노천굴(露天掘)로 채굴하며, 따라서 일찍이 조선 중기에 개발된 기록이 있다. 매장량은 600만 톤 가량으로 추정된다. 채광된 광석은 대동강 하구의 금산포, 서해리 또는 장련면의 금복리 등에 축조된 간이 적출항 시설을 통하여 송림제철소로 운송되었다.
1940년경에는 연 6만∼10만 톤가량의 철광을 산출하였으며, 특히 항일투쟁으로 잡힌 애국지사를 다수 광석채굴에 동원하여 희생을 가중시킨 악명 높은 광산으로 유명하다. 북한에서는 은율에서 서해리를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하였고, 연산 15만 톤의 생산능력을 가지는 1급기업체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