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말리마을과 고분골 사이의 동서로 가로지른 나지막한 산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곳에는 고분 외에 토성·우물 등이 있으며, 1955년부터 1966년에 걸쳐 5차례의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된 유구(遺構)는 토성, 나무널무덤〔木棺墓, 혹은 土壙墓〕 2기, 나무덧널무덤〔木槨墓〕 6기, 대형 나무덧널무덤〔大形木槨墓, 일명 귀틀무덤〕 3기, 독무덤〔甕棺墓〕 6기, 기와묘 2기 등이다.
독무덤과 기와묘를 제외하고는 봉분이 방대형(方臺形)으로 한 변의 길이가 1.5m 내외, 높이가 2m 내외의 것들이다.
나무널무덤은 무덤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널과 부장품을 넣은 뒤 봉분을 쌓은 것이다. 모두 홑무덤〔單葬墓〕이다. 나무덧널무덤은 움구덩이 속에 나무덧널을 설치한 것이다. 덧널은 부장품을 넣기 위한 딸린 덧널〔副槨〕과 나무널을 넣기 위한 덧널로 구분되어 있고 홑무덤 또는 어울무덤〔合葬墓〕으로 되어 있다. 대형 나무덧널무덤은 보통의 나무덧널무덤보다 규모가 크고 덧널에 널이 2개씩인 합장묘이다.
나무널무덤과 나무덧널무덤 출토유물 중 토기로는 화분형토기와 회색토기단지가 있다. 무기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철검·철칼〔鐵刀〕·고리철칼〔環頭鐵刀〕·철투겁창〔鐵鉾〕 등이 있다. 그 밖에 철도끼·낫·끌 등의 공구와 말재갈·차축두(車軸頭)·일산대 꼭지 등의 수레부속품, 각종 유리구슬 등이 있다. 대형 나무덧널무덤 출토유물 중에서는 철단지와 세발토기〔三足土器〕 등이 새로우며, 무기류·공구류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들 묘제는 부장품과 무덤형태에 의해 대체로 나무널무덤→나무덧널무덤→대형 나무덧널무덤의 순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울무덤은 종래의 전통적인 홑무덤에 새로운 풍습이 도입, 보급된 사정을 말해준다.
독무덤은 움 속에 화분형 토기나 회색 꼰무늬토기〔繩文土器〕 2개를 맞붙여 독널을 만든 것으로 소형의 것이다. 기와묘는 예가 드문 것인데, 기와와 벽돌을 이용해 원통형으로 만든 것과 움을 파고 그 위에 기와 한 벌을 덮은 것이 있으며, 길이는 모두 1m 미만의 소형이다. 출토유물로는 화분형 토기가 있다. 기와는 황색으로 모두 승문타날(繩文打捺)된 것이다.
토성은 경사진 산세를 이용해 쌓았는데, 길이 100m, 높이 2∼3m 정도이다. 토성 밖에는 8m 너비의 물도랑이 나 있다. 건물지(建物址)에서 철기류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막새기와 중에는 ‘千秋萬歲(천추만세)’의 명(銘)이 새겨진 한대(漢代)의 것도 보인다. 출토유물로 보아 토성과 고분군은 관계가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한 대 유물 및 대형 나무덧널무덤의 존재는 이 유적이 낙랑 유적과 시기적으로 병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유적의 연대는 대체로 서기전 1세기 말∼2세기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