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홍택주의 손자 홍우섭(洪禹燮)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충호(李忠鎬)의 서문이 있다.
4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01수, 만사 46수, 권3에 소 2편, 서(書) 28편, 서(序) 4편, 기(記) 6편, 권4에 지발(識跋) 5편, 축문 3편, 상량문 2편, 제문 2편, 묘지명 2편, 묘갈명 1편, 잡저 2편, 전(傳) 1편, 정문(呈文) 3편,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척사소(斥邪疏)」에서는 척사의 방법으로 선비들의 습속을 바로잡아 사치를 금하고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며 행의(行誼)와 경술(經術)을 돈독히 할 것을 건의하였다. 과거제도에 있어서도 현행의 시·부(賦)·표(表)·의의(疑義)·논(論)·책(策) 등의 과목 중에서 실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부·표·의의 등은 없애고 논·책 2과만 둘 것을 청원하였다.
「청봉환대원군소(請奉還大院君疏)」는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최익현(崔益鉉)의 탄핵으로 쫓겨난 흥선대원군의 복위와 군부(君父)를 논박한 최익현의 처벌을 주청한 글이다. 조선 후기의 정치 및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서(書)는 이휘재와 이만시(李晩蓍) 등 사우(師友)들과 문답한 것으로 시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잡저의 「권유응강제생(勸諭應講諸生)」은 고을의 훈임관(訓任官)으로 있을 때 강생들에게 권유한 글이다. 글을 배우는 사람은 농업과 양잠을 외우는 데만 힘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성찰하고 실지로 체험하여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 밖에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을 따라와서 공을 세운 장해빈(張海濱)에게 작위(爵位)와 시호(諡號)를 내리라고 주청한 「장찰방청증사정수의장(張察訪請贈事呈繡衣狀)」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생전에 어버이가 좋아하던 수박을 복상(服喪) 중에 지내던 움막 주변에 심어서 아침저녁으로 제상에 올린 신대원(申大遠)의 효행을 보고한 「신효자정포사정수의장(申孝子旌褒事呈繡衣狀)」 등은 충효의 관념을 일깨워주는 좋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