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돈녕부사, 한성부판윤, 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장례원판결사·동부승지, 좌·우승지, 병조참지·참의, 형조참의·대사간·한성부우윤·오위부총관·승문원제조·공조참판·도승지, 호조·병조참판, 동지의금부사·대사헌·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62년 아버지가 죽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로 인양군(仁陽君) 작위에 습봉(襲封)되었고, 1767년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의 추천으로 한성부판윤 겸 지의금부사가 되었다가 곧 예조판서에 특배(特拜)되었다. 비변사(備邊司)·사옹원(司饔院)·혜민서(惠民署)의 제조(提調)에 이어 1773년 수어사(守禦使)·판의금부사에 특배되었다.
1774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라 기로소(耆老所)에 입사하였다. 1778년 정조의 후사(後嗣)를 위하여 홍국영(洪國榮)의 누이 원빈(元嬪) 홍씨(洪氏)가 간택되었을 때 이를 반대하였으나, 가례가 이루어지자 가례청당상(嘉禮廳堂上)의 자리에 있다가 곧 병을 이유로 체직(遞職: 다른 자리로 옮김)하였다. 7월에 명릉(明陵)의 봉심(奉審)을 게을리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이계집(耳溪集)』(홍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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