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연산군 12)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가함(假銜: 외교사절로 파견시 명예로 한 품계 올려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일)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오고, 곧 정3품 통정대부에 승자하였다.
1506년(중종 1) 우부승지(右副承旨)에 발탁되고, 다음 해 이과(李顆) 등의 모역사 추국에 참여한 공로로 정난공신(定難功臣) 3등에 책록되면서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고 행좌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508년 강원도관찰사로 파견되고, 다음해 승려를 공궤하고 청탁을 받고 결송(決訟)한 일로 파직되었다. 뒤이어 “장(杖) 100, 유(流) 3000리”에 논죄되었으나 중종의 옹호로 용서를 받았다.
1510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파견되고, 경주부윤(慶州府尹)에 교체되었다. 1514년 우윤(右尹)과 좌윤을 지내고 다음해에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수릉관(守陵官)이 되었다. 1517년에 공신회맹(功臣會盟) 때에 받은 대가(代加: 품계를 올려 줄 사람을 대신해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자에게 품계를 올려주던 제도)를 사위에게 준 일로 파직되었다.
1518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다음해 연안(延安) 도호부사를 거쳐 1520년(중종 15) 동지중추부사로 중앙에 돌아왔으며, 곧 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總管)으로 교체되었다. 중종의 신임을 받으면서 장기간 재상직에 있었지만 별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 한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전의이씨족보(全義李氏族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