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해동(李海東). 작호(爵號)는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영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이고, 아버지는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이다.
아버지 이인이 상인들에게 진 부채가 할아버지 영조에게 알려져, 1771년(영조 47)에 직산에 유배되었다. 다시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774년(영조 50)에 풀려났다.
한편, 백형(伯兄) 상계군 이담(常溪君 李湛)은 1779년(정조 3)에 홍국영(洪國榮)의 음모로 모반죄로 몰려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1786년(정조 10)에 자살하였으며, 어머니 송씨(宋氏)와 형수 신씨(申氏: 상계군 이담의 처)는 1801년(순조 1)에 천주교 신자로 사사되면서 아버지도 사사되었다.
이와 같이 이광은 부모와 형·형수의 죄로 연좌되어 강화부 교동으로 쫓겨나 불우한 일생을 빈농으로 보냈다. 소생으로는 회평군 이명(懷平君 李明, 초명은 李元慶), 영평군 이경응(永平君 李景應), 덕완군 이원범(德完君 李元範)이 있다.
1849년(헌종 15) 헌종이 후사없이 죽어 셋째 아들 이원범이 철종으로 등극하자 전계대원군에 추봉되었다. 사후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진관리(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은언군 묘 아래에 예장하였고 1856년(철종 7년) 경기도 포천군(현 포천시)에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