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겸(伯謙). 한원군(漢原君) 이수철(李守哲)의 후손이며, 이흥현(李興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상여(李相如)이고, 아버지는 이서복(李瑞復)이며, 어머니는 박덕승(朴德承)의 딸이다, 이서징(李瑞徵)에게 입양되었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憲世子)가 창덕군 선인문(宣仁門) 안뜰에서 영조의 친국을 받고 뒤주에 갇힐 때에 가주서로서 배종하였다. 의관(醫官)을 불러들이고 왕세손(뒤의 정조)을 몰래 장헌세자와 대면시키는 등 설서 권정침(權正忱), 한림 임덕제(林德躋), 사서 임성(任珹)과 함께 장헌세자의 구명에 힘썼다. 관직은 사헌부지평에 이르렀다. 1899년(광무 3)에 내부대신에 추증되었다.
고종의 명을 받아 서정순(徐正淳)이 「시장(諡狀)」(1900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