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미(君美). 이수(李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형신(李炯信)이다. 아버지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이당(李堂)이며, 어머니는 김중형(金重亨)의 딸이다.
1727년(영조 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순릉참봉(順陵參奉)이 되었다가 그 해 겨울 사직하였다. 1737년 태릉봉사(泰陵奉事)를 거쳐 명릉봉사(明陵奉事)·정릉직장(靖陵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4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에 이어 시강원설서에 임명된 지 며칠 만에 사헌부장령에 특제되었으며, 그뒤 정언·지평 등을 역임하면서 과거(科擧)·전정(田政)·군정(軍政)·적법(籍法)에 대한 구폐책(救弊策)을 올렸다.
1741년 겨울 시강원사서로 연행사(燕行使)가 되어 「공성사적도(孔聖事蹟圖)」를 가지고 돌아왔고, 1742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 때 영남 지역에 양전사업(量田事業)이 있어 경상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 뒤 양역사정(良役査正) 문제로 공조정랑이 되어 비변사낭청의 실무를 관장하였다. 이어 무안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