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이희담(李希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득구(李得丘)이다. 아버지는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이주(李周)이며, 부인은 박의림(朴義林)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고, 1422년(세종 4)경 병조정랑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황해도경차관으로 파견되어 감사 이하의 구휼사를 규찰하였으며, 1424년 지이천현사(知利川縣事)로 파견되었다.
1425년 경기·충청도 정역찰방(程驛察訪)이 되어 민정을 깊이 살피고 민생의 이익 진흥과 해독 제거를 건의, 감찰(監察)로 입조하였다가 곧 파직되었으나 직첩을 돌려받고 다시 경기·충청도 정역찰방에 서용되었다.
1430년(세종 12) 선산도호부사로 파견되고, 1434년 인수부소윤으로 중앙에 돌아왔으며, 1436년 집의(執義)에 승직되었다. 1440년(세종 22)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형조참의에 발탁되고, 황해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임지에서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