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이병화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시가 많은 양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 만시가 가장 많다. 친구 등 교유인(交遊人)에 대한 것과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시도 있다. 사에는 내종제 정태흠(鄭泰欽)의 애사가 있고, 명에는 「포의대명(布衣臺銘)」 등이 있다. 서(書)는 조긍섭(曺兢燮)·정규석(鄭珪錫)·정표환(鄭杓煥)·이정수(李定洙)·정재완(鄭在䛷)·이완기(李完基) 등과 함께 학문과 시사(時事)에 대해 논한 내용을 적고 있다.
기에는 「내현재중수기(乃見齋重修記)」·「혼돈실기(混沌實記)」·「하량정기(夏凉亭記)」와 회강(晦岡)·구산(鳩山)의 서실기(書室記) 등이 있고, 서·발에는 「성재정옹수서(誠齋鄭翁壽序)」와 「월연집발(月淵集跋)」 등이 있다. 설에는 「우관설(藕觀說)」·「춘곡설(春谷說)」 등이 있다.
잡저 가운데 「가소사종설의의(賈疏四種說疑義)」는 『의례(儀禮)』의 ‘참최3년부위장자조(斬衰三年父爲長子條)’의 “승중(承重)이라도 3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4종 있다.”라고 한 것의 의의를 논술한 것이다. 「송우암기해예설변(宋尤庵己亥禮說辨)」은 효종이 죽은 뒤 대왕대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로 남인과 서인이 대립했을 때 서인의 거두 송시열(宋時烈)의 예설에 대한 변설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당쟁사와 상복제(喪服制)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자료이다.
제문은 주로 김극영(金克永)·허현(許現)과 친척들에 대해 적고 있다. 묘표·묘갈·묘지명은 이우조(李佑肇)·하여관(河汝觀)·이도응(李道膺) 등에 대한 글이다. 행장과 유사는 이도추·이도욱(李道郁)과 선조에 대해 적었다. 전기는 이태상(李泰翔)과 조인제(趙麟濟)의 처 열부(烈婦) 하씨(河氏)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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