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 출생.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 할아버지는 습독(習讀) 이현우(李賢佑)이고, 아버지는 증참판 이충량(李忠樑)이다. 어머니는 나주박씨로 부사직 박승장(朴承張)의 딸이다. 형조참판 이현보(李賢輔)의 종손자이다.
10여 세에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여 스승으로부터 자식처럼 사랑을 받았다. 모든 학문에 뛰어났으나 특히 역학에 밝았다. 1578년(선조 11) 조정에서 이름난 선비 아홉 사람을 천거할 때 제4위로 뽑혀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이 되고, 이어 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를 역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따라 성천까지 호종하였다.
이 때 상소문에 귀선도(龜船圖)를 첨가하여 바다에는 거북선과 육지에는 거북거[龜車]를 사용할 것을 진언하였다. 다음해 봄에 영춘현감으로 나아가 난리 중에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논어』·『중용(中庸)』·『심경(心經)』·『고문전후집(古文前後集)』·『가례(家禮)』 등을 주석하였으며, 후에 호종의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영주의 오계서원(迃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주역질의(周易質疑)』·『사서질의(四書質疑)』·『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주자서절요강록(朱子書節要講錄)』·『간재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