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형보(亨甫).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시담(李時聃)이며, 어머니는 군수 이덕순(李德淳)의 딸이다.
학문이 높았으나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홍주와 여주 등을 옮겨다니면서 어렵게 살면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자손들에게 항상 성현을 경모하고 근검절약을 잊지 말라 경계하였다. 조용히 학문을 닦았을 뿐 세상에 나타나기를 꺼렸으나, 이돈의 문명을 전하여들은 김익희(金益熙) 등이 조정에 천거하여 6품(六品)에 서용되었다.
1652년(효종 3) 금정찰방(金井察訪)이 되고, 1657년 경양찰방(景陽察訪)을 거쳐 1668년(현종 9) 예빈별제(禮賓別提)가 되었다. 1671년 횡성현감, 1674년 통진현감을 거쳐, 1675년(숙종 1) 청도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지에 부임한 뒤 그 곳의 오랜 폐단을 바로잡은 다음, 몇 달을 넘기지 않아 사임하고 떠나버렸다. 많은 관직을 역임하면서도 오직 백성을 위하는 일에만 전념하였을 뿐, 자신은 매우 가난하게 지내어 세인의 칭송이 자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