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골격에 중국의 속어(俗語) 또는 특수한 용어 등을 섞어 쓴 공문서식을 가리킨다. 중국의 속어로는 ‘즘마(怎麽, 무슨)·저리(這裏, 여기)·나시(那廝, 이놈)’ 등이 그 예이고, 특수한 용어로는 ‘조회(照會)·해용(該用)·정걸시행(呈乞施行)·합행이자(合行移咨)’ 등이 그 예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문이 문제된 것은 중국과의 외교문서에 이것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외교문서는 원래 순수한 한문으로 썼으나 이러한 이문으로도 썼는데, 한문만 통달하여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고려 공양왕이 이학교관(吏學敎官)을 사역원(司譯院)에 두어 이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서도 사역원 또는 승문원에서 이문교육이 행하여졌다.
이문학습에 사용된 교재는 ≪이문등록(吏文謄錄)≫·≪지정조격(至正條格)≫·≪대원통제(大元通制)≫ 등이며, 현재는 ≪지정조격≫의 일부와 ≪이문≫이 전한다. ≪이문≫은 실제의 외교문서를 자료로 하여 편찬한 것으로 원래 4권 4책이나, 권1이 없다. 범례에 따르면 권1은 한문인 선유성지(宣諭聖旨)로 구성되었기에 이문의 학습과는 무관하여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편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실린 문서의 연기가 1478년(성종 9)으로 끝나므로 성종 때에 승문원에서 편찬하여 간행된 듯하다.
이 책에 수록된 가장 오랜 문서는 1370년(공민왕 19)의 <중서성자 中書省咨>이고 최후는 1478년의 <예부제 禮部題>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여말 선초 108년간의 대명(對明) 외교문서선집의 성격도 가진다.
≪이문≫의 이본 중 가장 오랜 것은 중종 때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을해자본(乙亥字本) 권2·3 2책(서울大學校圖書館想白文庫, 李謙魯 소장)이다. 이보다 조금 늦은, 아마도 명종 때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갑인자본(甲寅字本) 권4 1책(李謙魯 소장)이 따로 전한다.
이 밖에 목판본이 2, 3종 있으나 임진왜란 이후의 간본이다. 그 중 1책(현재 日本宮內廳書陵部 소장)을 대본으로 하여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가 일본어로 훈독하였는데, 1942년 활판으로 간행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이 책은 국내 소장의 목판본보다도 조잡하므로, 이를 대본으로 한 활판본의 이용에는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최세진의 ≪이문집람 吏文輯覽≫ 범례에 의하면, ≪이문≫ 이후의 외교문서를 가려서 ≪이문속집 吏文續集≫도 편찬하였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그 속의 난해한 용어를 풀이한 ≪이문속집집람≫이 ≪이문집람≫에 합철되어 전할 뿐이다. 이문은 이두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연구는 중국의 속어와 관청용어의 이해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자생활의 역사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하며, 책 ≪이문≫은 이문의 실상을 보이고 중국과의 외교문제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