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우(文雨).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식(李寔)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 이익(李瀷)이며, 아버지는 익위사사어(翊衛司司禦) 이인실(李仁實)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이 일어난 뒤 이현령(李玄齡) 등의 상소로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이 문묘에서 출향(黜享)되자, 그 해 3월에 진사로서 유봉휘(柳鳳輝)·이사중(李師中) 등의 뒤를 이어, 경기유생 200여 명을 이끌고 소두(疏頭)가 되어 대궐 앞에 엎드려 이이·성혼의 출향의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이 때문에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단천으로 정배되었다가 그 해 가을에 대한(大旱)으로 인하여 사면되었다. 유배가 풀린 뒤로는 세상에 뜻이 없어, 아우 이정(李烶)과 함께 가솔(家率)을 모두 데리고 충주의 선롱(先垅)으로 이거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단천에 유배되었을 때에 지은 『부춘당북천록(富春堂北遷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