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춘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근회(根晦)
  • 학천(鶴川)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보(眞寶: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
  • 사망 연도1625년(인조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 출생 연도1542년(중종 37)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덕 (고려대학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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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근회(根晦), 호는 학천(鶴川). 아버지는 처사인 이희성(李希聖)이고, 어머니는 양근김씨(楊根金氏)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세필(金世弼)의 딸이며, 익성군(益城君) 김이갱(金以鏗)의 손녀이다. 이황(李滉)의 족자(族子)로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5년(선조 8)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로 임명되어 전적(典籍)에 이르렀으나 오랫동안 친환(親患)을 돌보느라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1581년 부친상을 당하였다.

이후 벼슬에 뜻이 없어 오랫동안 산림에 묻혀 살았고, 영덕현감(盈德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만년에 성균관 직강(直講)이 되었으나 스스로 세인과 어울리지 못함을 알고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봉춘은 성품이 대범하고 관대하여 평생 동안 이론을 제기해 높은 체하거나 시속을 따라 지조를 더럽히는 일이 없었다. 저서로는 『학천유집(鶴川遺集)』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 『학천유집(鶴川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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