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서인 김석주(金錫胄) · 김익훈(金益勳) 등이 남인 허견(許堅) 등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발한 경신대출척에 가담하여, 남인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워 보사공신(保社功臣) 2등으로 책록되고 완녕군(完寧君)에 봉해졌다. 1681년 사간이 되고, 그 뒤 홍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8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그 곳에서 주조하는 주전(鑄錢)을 감독하였다. 1685년 형조판서가 되고, 이듬해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1688년 윤세희(尹世喜) 등의 탄핵으로 삭주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는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가 뒤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문장과 시재가 뛰어난 석학이었으나, 당쟁에 깊숙이 관여한 탓으로 유배지에서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연천집(淵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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