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산(德山). 이사목(李思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영(李瑛)이다. 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 이유(李愉)이고, 어머니는 삼사좌윤(三司左尹) 안영부(安永孚)의 딸이며, 부인은 현감(縣監) 황선경(黃善慶)의 딸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한 뒤, 이 해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1430년 도사(都事)로 파견되고, 1432년 우헌납(右獻納) 재직 중 “이선(李宣)은 서얼이기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다.”고 한 말로 인해 세종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고 직첩(職牒: 관직 임명사령장)을 몰수당하였다. 다음해에 직첩을 돌려받고 서용되며, 1435년에는 호조정랑에 제수되었다.
1437년 경기도 경차관(敬差官)에 파견되었다가 진휼을 소홀히 한 일로 다시 파직되면서 직첩을 몰수당하였다. 1438년 직첩을 돌려받고 함길도도절제사·경력(經歷)에 서용되었다.
1444년(세종 26) 장령(掌令)에 제수되고, 곧 사복시소윤(少尹)에 체직(遞職: 교체 임명됨.)되었으며, 1452년(문종 2) 자산군수를 거쳐, 창성 도호부사에 승진하였다. 1454년(단종 2) 사복시 판사(判事)를 역임하고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병조참의에 제수되었다.
1457년(세조 3) 강릉대도호부사로서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고, 곧 중앙으로 돌아와 종2품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졸하였다. 묘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적덕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