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이여량(李汝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효훈(李孝訓)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지하(李祉遐)이며, 어머니는 한진(韓震)의 딸이다.
1697년(숙종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나이 35세 때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이 되었다. 그뒤 전적, 예조와 병조의 좌랑과 정랑, 서산현감, 전라도와 강원도의 도사, 울진현감 · 정언 · 헌납 · 지평 · 장령 · 장악원정을 역임하고, 1716년(숙종 42)에 강계부사가 되었다.
그 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형조와 호조의 참의를 지내고, 성주목사로 발령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722년(경종 2년) 6월 탐욕스럽고 방종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지극한 효자로 아버지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의 입에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지극한 정성으로 시묘를 하면서 애통해하였으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또다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스스로의 몸과 어머니의 병을 대신하여줄 것을 신에게 빌었다. 여러 번 손가락을 자른 것이 병이 되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