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정경(正卿). 참의 이지직(李之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극배(李克培)이며, 어머니는 세자시강원좌필선(世子侍講院左弼善) 최유종(崔有悰)의 딸이다. 부인은 우참찬(右參贊) 현석규(玄碩圭)의 딸이다.
문음으로 출사하였다. 1475년(성종 6) 오위사정(五衛司正)으로서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다. 이후 1488년까지 이조정랑, 지평(持平),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장령(掌令), 경상도경차관(慶尙道敬差官),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 등을 역임하였다.
1488년경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면서 직제학(直提學)에 승직하고, 다시 정3품 통정대부에 승진하면서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었으며, 다시 동부승지(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 1489년 병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체직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폐비 윤씨에게 승지로서 사약(賜藥)을 받들고 간 일로 사사(賜死)된 이세좌(李世佐)의 4촌인 것과, 연산군 즉위 초 경연에서 역대의 치란(治亂)을 논하고 이단(異端, 불교)의 폐해를 극간하여 연산군의 노여움을 산 일로 인해 사사되었다.
1506년(중종 1)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 버림)되고, 이조참판에 추층(追贈)되었다. 묘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불현(佛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