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수안군 영구면 석달리 195 출신. 한국전쟁시 대위로써 공군비행단의 편대원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이세영 대위는 평양3중학교를 3년 중퇴하고 일본 다치아라이(太刀洗)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한 뒤, 북한군 중위로 복무하다가 1948년 3월에 월남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육군 항공군 사령부에 입대 북무하였다.
그리고 1950년 4월 25일에는 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조종사로서 한국전쟁 초기에는 L-형 항공기를 조종하여 적정, 정찰, 지휘관 수송, 전단(傳單) 살포 등 47회의 정찰 및 연락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951년부터는 F-51 전폭기 조종사로 전환하여 같은해 4월 3일 이천지구 적 보급로 차단작전을 시작으로 연일 적진 출격에 임하여 적 군용시설 44개소, 보급품 집적소 11개소, 보급품 운반트럭 44대 등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동년 4월 21일 곡산방면에 집결한 적진 출격 중 적탄에 맞아 귀환이 불가능해지자 적진 속으로 돌입하여 최후를 마쳤다.
이세영 대위는 13회 23시간 52분간의 대지공격 기록과 47회의 적지 정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강하고 임무수행에 투철한 장교였다고 한다. 전사후 소령으로 추서되었으며, 을지무공훈장, 수훈비행십자장, 공비토벌기장 등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