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원(道遠).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남(李井男)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시술(李時術)이며, 어머니는 홍영(洪霙)의 딸이다.
1652년(효종 3) 생원·진사 양시에 모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가 가주서가 되었다. 다음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1665년 대교에서 봉교로 승진하고, 이어 성균관전적에 올랐다가 사간원정언·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영남어사가 되어 경상도로 내려가, 다른 사람이 가기를 꺼리는 절해 각 도서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의 실정을 낱낱이 살펴 보고하였다. 1667년 시강원사서·지평·지제교에 제수되었으며, 옥당에 선입되어 부수찬에 제배되고, 이조좌랑으로 승진되었다.
교리·헌납을 역임하고, 다시 이조정랑으로 사서를 겸하였다. 1668년 병조좌랑으로 체배되었다가 이조로 환배되었으나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