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백(茂伯)·고청(孤靑), 호는 노초(老樵)·서림(西林). 세자시강원보덕 이민곤(李敏坤)의 아들이다. 박필주(朴弼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문명을 떨쳤다. 1756년(영조 32) 아버지가 북도(北道)에 유배 중 금성(金城)의 역사(驛舍)에서 불에 타 죽는 참상을 보고, 벼슬에의 뜻을 단념하고 서산(西山)에 은거하여 오로지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다. 특히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대체로 이이(李珥)의 학설에 동조하는 논지를 전개하였다.
한편, 실학의 대가인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 등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실학을 깊이 연구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실적 측면에 관심을 쏟았다. 한때, 세마(洗馬)·참봉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저술에만 힘썼다. 저서로는 『노초집(老樵集)』 12권 6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