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정랑,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금계군 이인수(錦溪君 李仁壽)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젊어서 이영언(李英彦)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고 이어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불가함을 간하여 옥고를 치르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1642년(인조 20) 성균관전적이 되었다가 얼마 뒤 예조좌랑으로 전직되었다.
다음 해 경상도도사로 나갔다가 예조정랑으로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이어 지평이 되어 직언을 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현직(顯職)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뒤에 전라도·평안도 도사와, 안주·경성 판관,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옥천군수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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