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아(士雅). 아버지는 흥해군수(興海郡守) 이호겸(李好謙)이고, 어머니는 종묘서령(宗廟署令) 박직언(朴直言)의 딸이다. 부인은 이조참판(吏曹參判) 춘양군(春陽君) 이내(李徠, 효령대군 손)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시에 일등으로 합격하고 출사(出仕)하였다. 1480년 종친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 효령대군 손)의 처인 어을우동(於乙宇同)이 다수의 사족과 간음한 일로 교사(絞死)될 때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고 직첩을 몰수당하였다.
1482년 직첩을 돌려 받고, 1484년(성종 15) 행실로 인해 문과응시가 금지되기는 하나 음률과 활쏘기에 능하다 하여 특별히 선전관(宣傳官)에 서용되고, 참군(參軍)을 역임하고 졸하였다. 1519년(중종 14) 아들 이장곤(李長坤)의 현달로 인해 좌찬성(左贊成)에 추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