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4년(선조 27) 통사(通事)로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훈련도감 설립과 병사 훈련에 동분서주하며 활약하였다. 이듬해에는 명장 호택(胡澤)의 은광 채굴에 통역을 맡았다.
1596년 명사(明使) 여희원(余希元)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다녀 왔다. 1598년 명나라 유정(劉綎)제독과 유성룡(柳成龍) 사이를 분주히 왕래하며 의사를 전달하고, 명장 유정과 양호(楊鎬) 사이의 작전에 있어 견해가 달라 정부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자 양 진영 사이를 오가며 의사를 전달하였다.
왜란 초에 동정(東征)제독으로 온 이여송(李如松)의 위압에 당황한 조정이 이여송의 마음을 달래려 하고 있을 때 마침 바둑 잘두는 사람을 찾자, 종실 덕원령(德原令)과 대국(對局)케 하였는데 바둑을 마치자 이여송이 이억례에게 말하기를 “통역관도 바둑 둘 줄 아는가?”하자 이억례는 “바둑이란 사람의 취미이나 소인은 그런 것에 능함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이여송이 다시 “통역관이 능하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묻자 “세 치되는 혀로써 노야(老爺)의 마음을 풀어드리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비로소 크게 웃고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1599년(선조 32) 왜란 중 명군(明軍) 진영을 왕래하면서 애쓴 공로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