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오(仲悟). 이인충(李仁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필(李弼)이다. 아버지는 이계장(李繼長)이며, 어머니는 성세정(成世貞)의 딸이다.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548년(명종 3)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지평이 되었는데 이 해 흉년이 크게 들어 민정을 살피기 위해 함경도어사로 파견되었다.
돌아와서 특별히 대간(臺諫)의 관료들을 수령으로 파견, 민심을 수습하도록 건의하였는데, 이에 따라 여산군수(礪山郡守)가 되었다. 1552년 예조정랑으로 봉은사(奉恩寺)에서 폐지되었던 승과(僧科)를 다시 설치함에 그 시관이 되었다.
이듬해 의정부검상에 이어 다시 지평이 되었는데, 이 때 지방의 수령·첨사(僉使)·만호(萬戶) 등이 관고(官庫)를 탕진하고 군민(軍民)의 침탈이 심하여 이를 조사하기 위해 평안도어사로 파견되었다.
1555년 응교·집의·부교리를 차례로 역임하고 이듬해 교리가 되었는데, 권신(權臣) 윤원형(尹元衡)의 천거로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에 올랐다. 1557년 홍문관직제학이 되었고, 이듬해 원접사(遠接使)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였다.
이어서 예조참의, 동부승지, 호조참의, 좌부승지, 병조참지에 이어 이조참의를 차례로 역임하였고 1563년(명종 18)에는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