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양(江陽: 현재의 합천). 자는 우상(虞裳), 호는 송목관(松穆館)·창기(滄起). 세거지지(世居之地: 대대로 살고 있는 고장)는 서울이며,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용휴(李用休)에게 수학하였다.
1759년(영조 35)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사역원주부가 되었고, 1763년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 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시문과 서예에 능하여 스승 이용휴에게 영이적(靈異的) 천재로 인정받았다.
그의 시는 자연·영물·회고·풍자·변새(邊塞)·궁원(宮怨) 등 다양한 내용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성당(盛唐)의 시풍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대개 수준높은 걸작들이다.
27세에 요절하였다. 죽기 전 모든 초고를 직접 불살라버려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으나, 초고를 불사를 때 그의 아내가 빼앗아 둔 일부의 유고가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라는 이름으로 편집되어 전한다. 한편 그에 관한 한문단편소설로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우상전(虞裳傳)」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