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휘(季徽), 호는 용탄(龍灘). 이진경(李振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이민성(李民聖)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딸이다.
생원으로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로 벼슬길에 들어 섰다. 이듬해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오르고 그 해 부친상을 당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부수찬이 된 후 수찬을 역임하였다. 1625년(인조 3) 홍문관교리가 되고, 이어서 수찬·교리·우부승지를 차례로 역임한 후 1630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신천(信川)·송화(松禾) 등지에 횡행하는 도적을 잡아 백성들의 피해를 막은 군수 박로를 포상토록 건의하여 가자(加資: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오름.)시켰다. 또 서해에서는 잡히지 않는 귀한 청어를 진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