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세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직서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영백(榮伯)
  • 일휴정(日休亭)
인물/전통 인물
  • 본관벽진(碧珍: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 사망 연도1698년(숙종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직서참봉
  • 출생 연도1618년(광해 10)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덕 (고려대학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휴정문집 미디어 정보

일휴정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사직서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영백(榮伯), 호는 일휴정(日休亭).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충민(李忠民)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훈련원정(訓鍊院正) 권덕시(權德時)의 딸이다. 족조인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5년 오제(梧製: 칠석날에 보는 시험)에 입격하여 사찬(賜饌)을 입었다. 1657년(효종 7) 정부에서 재변(災變)으로 인해 구언(求言)을 하자 이영세는 응지소(應旨疏)를 올려 ‘간언을 받아들이고, 기강을 바로잡으며, 사치를 억제하고, 학교를 일으키는 것’ 등 시무(時務)에 적합한 구제 방법을 진언하였다.

1679년(숙종 5)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이듬 해 사직하고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영세는 어렸을 때 스승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사제 간의 의리란 중대한 것이라 하며 수개월 동안 빈소를 지키고 돌아왔다. 저서로는 『일휴정문집(日休亭文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 『일휴정문집(日休亭文集)』

  • - 「장사랑 사직서 참봉 월곡 이공 묘지명(將仕郞社稷署參奉月谷李公墓誌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