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철

  • 종교·철학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총부학원교무, 교정원장, 감찰원장 등을 역임한 원불교인.
이칭
  • 응산(應山)
  • 이칭이형중(李亨中)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미상
  • 사망 연도1965년 10월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7년
  • 출생지전라남도 영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홍철 (원광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총부학원교무, 교정원장, 감찰원장 등을 역임한 원불교인.

내용

본명은 형중(亨中), 법호는 응산(應山). 전라남도 영광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0년 형 동안(東安)이 신천리 신흥에서 수신조합(守信組合)을 창설, 농촌계몽운동을 일으킬 때 적극 조력하였다.

1924년 4월에 원불교에 입교, 1930년 3월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총부 농업부원으로 출발하여 총부학원교무·서울지부교무·영산지부교무·총부교감·영산지부장·교정원장·감찰원장 등 교단의 요직을 거치면서 36년 동안 전무출신으로 봉직하였다.

1934년에 수위단원(首位團員)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원불교총부 수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 뒤 총부에 주재하면서 정산(鼎山)과 대산(大山) 두 종법사(宗法師)를 보필하였다.

수행에 정진하면서도 많은 시를 지어 시선일치(詩禪一致)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며, 『회보(會報)』, 『원광(圓光)』 등에 100여 편에 달하는 논설·수상·시가·한시 등을 발표하였다.

1965년 10월 총부법회에서 “불법(佛法)은 물과 같다. 물쓰듯이 활용하자.”라는 최후 법문을 남기고 사망했다. 종사위(宗師位)와 대봉도(大奉道) 법훈(法勳)을 받았으며, 사후에 그의 글들을 모아 『응산종사문집(應山宗師文集)』을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 - 『응산종사문집(應山宗師文集)』(응산종사문집간행회편, 원불교문화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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