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야(仲野). 이숙묘(李叔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다. 아버지는 이예견(李禮堅)이며, 어머니는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7년(중종 2) 이조좌랑이 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21년 청주목사가 되었다. 한 번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항구적인 대책으로, 관내의 한지(閑地)를 개간하여 경작지를 넓힐 것을 국가에 건의하여 이를 실행하였다.
이어서 강릉부사·제주목사, 호군·사과(司果)·위장(衛將), 남양부사 등을 거쳐 1532년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