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의 이성현(利城縣) 토산조(土産條)에는 철출나하동(鐵出羅下洞)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나하동은 지금의 창흥리를 뜻한다. 이를 통해 이원철산의 개발 역사가 450년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근대식 채광이 시작된 것은 1911년으로, 그 해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이원철산주식회사 설립허가를 얻었다.
그 뒤 1917년에 자본금 100만원으로 회사가 설립되었고, 1918년부터 철광석의 채굴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적철광(赤鐵鑛)이 산굴되며 함철품위(含鐵品位)가 45∼60%로 우수한 철광산이다.
철산이 해안에서 불과 2㎞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고, 또 동해안에서도 좋은 항구로 알려진 차호항(遮湖港)에서 10㎞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채굴 조건이 유리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광구는 서·북·남쪽의 세 방향이 화강암으로 포위되어 있는 곳으로, 주로 상원계(祥原系)에 속하는 규암(硅岩)·천매암(千枚岩)·점판암(粘板岩) 등의 오래된 퇴적암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광체(鑛體)는 규암과 운모편암(雲母片岩)의 호층(互層) 중에 배태되어 있는데 광맥은 상하 두 줄로 나누어졌으며, 이들은 서로 평행하게 발달하여 있다.
주향은 거의 남북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경사는 50°서(西)를 나타내고 있다. 두 줄의 광맥 중에서 위쪽의 것은 광체가 폭 60∼150㎝이고, 길이는 100m에 이르며, 아래쪽 것의 길이는 거의 2㎞에 이른다. 함경선의 나흥역(羅興驛)에서 북쪽으로 건천(乾川)을 따라 급경사를 이룬 산곡을 2㎞ 가량 거슬러 오르면 철산이 나타난다.
산곡의 양쪽 급한 경사면에 적철광의 노두(露頭 : 광맥이나 석탄층 등이 지표에 노출하고 있는 부분)가 나타나는데 주위 일대가 새빨간 토질로 물들어 있다. 이 중에서 서쪽 사면에 나타난 노두에서 시작되는 광맥은 보암철산(寶巖鐵山)에까지 이르는 우수한 철산이다. 주갱은 서산갱(西山坑)·본산갱(本山坑)·동산갱(東山坑) 등으로 나뉘어 있다.
채굴된 광석은 갱 안에서 기계 분류기로 대소의 광괴(鑛塊: 광석의 덩이)로 나누어 반출한 다음, 차호로 운반한다. 함경선이 부설되기 전까지는 창흥리 가까이의 해안에 임시로 축조하였던 광석 적출항으로 보낸 다음 이곳에서 선편으로 차호항에 수송하였다.
함경선이 부설되고, 이어 이원철산에서 나흥역까지 이원철산선(利原鐵山線)과, 증산역(曾山驛)에서 차호항까지 차호선이 부설된 다음부터는 철도편을 이용하여 이원철산에서 차호항으로 직접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차호항에서는 광석 운반선으로 일본의 제철소에 수송하였다.
철광석 산출량은 1915년에 1만 3000t에 불과하였으나 1919년에는 7만 3000t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1924년에는 13만 6000t, 1935년에는 23만t으로 급증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채굴로 생산량이 격감하여 1942년에는 10만t으로 줄었고,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증산에 진력하였으나 철광석의 산출량이 5만t 전후에 머물렀다. 광복 후에는 한동안 5∼10만t의 산출량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으나 점차 군소 철산으로 쇠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