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주여(舟汝), 호는 호산(毫山). 아버지는 이인부(李仁簿)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 금부도사(禁府都事) 김명기(金命基)의 딸이다.
1778년(정조 2)에 향시(鄕試)를 거쳐 1788년에 진사(進士)가 되었고, 1789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예조낭관(禮曹郞官)·병조좌랑(兵曹佐郞)·전적(典籍)·직강(直講)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청렴결백 하였으며, 도량이 남달리 넒어서 매사에 급박함이 없었다.
호남 유생들의 무안장시(務安掌試) 때 시험장에 불이 나자 시험관 이하 모두 달아나는데 그는 ‘우리들마저 달아나면 납권(納卷: 거두어 들일 시험 답안지)과 시험 문권이 소실하게 되어 국가에 고시가 모두 허사가 된다.’고 하며 하배(下輩)에 명하여 불을 끄게 하였다. 저서로는 『호산문집(毫山文集)』 2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