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이정과 부인 김씨의 무덤.
연원/역사적 관련 사항
관직에 올라 우상시(右常侍),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 등을 역임하고, 1358년(공민왕 7)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뒤 고향 진천에 낙향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65세에 사망하여 이곳에 묻혔다. 고려 후기 공의 가문은 이성계의 지지 세력으로, 조선 개국공신 이거이(李居易, 1348~1412)가 이정의 아들이다. 1403년(태종 3) 문간(文簡)의 시호를 받았다.
형태와 특징
봉분 앞쪽 하단에는 장대석으로 1단의 호석을 설치하였으나 옆면과 뒷면에는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는 사성(莎城)이 둘러져 있다. 봉분 정면에 묘표가 있고, 1단 계체석 아래에 상석과 혼유석이, 양옆으로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높이 1.3m의 묘표는 장방형 대좌에 세워져 있으며, 상단부에 태극 문양을 새긴 구름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전면에 ‘이서원백문간공지묘(李西原伯文簡公之墓)’라 새겨져 있다.
부인 김씨의 묘는 이정의 묘와 형태가 같다. 봉분 전면의 묘표에는 ‘변한국대부인김씨지묘(卞韓國大夫人金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묘역 아래에는 1403년(태종 3) 건립한 이정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거북형 대좌 위에 지붕돌을 얹은 신도비는 권근(權近, 1352~1409)이 짓고, 아들 이거이가 세운 것이다. 묘역은 전반적으로 원형에서 변형되었지만, 봉분과 묘비는 여말선초 묘제의 특징이 남아 있다. 묘역 아래 초입에는 이정의 초상을 모신 사암영당(思庵影堂)이 자리한다.
현황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논문
- 김민규, 「조선시대 능묘비 연구」(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인터넷 자료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https://portal.nrich.go.kr/)
- 디지털진천문화대전(http://jincheon.grandculture.net/jincheon)
주석
-
주1
: 고려 시대에, 내사문하성에 속한 정삼품 낭사 벼슬. 우산기상시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2
: 고려 시대에 둔 형부(刑部)의 으뜸 벼슬. 우리말샘
-
주3
: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의 본명. 우리말샘
-
주4
: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
주5
: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우리말샘
-
주6
: 풍수지리에서, 묏자리의 뒤에 작은 맥이 혈의 가를 에워싼 두둑. 우리말샘
-
주7
: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
주8
: 무덤 앞에 편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대석. 우리말샘
-
주9
: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우리말샘
-
주10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11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