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이며, 무신집정(武臣執政) 이의민(李義旼)의 아들이다.
1188년(명종 18) 낭장을 거쳤고, 뒤에 삭주분도장군(朔州分道將軍)이 되어 흥화도(興化道)와 운중도(雲中道)의 양수척(楊水尺)들을 기생 자운선(紫雲仙)에게 소속시키고 공물을 징수하였다.
1196년 장군에 올랐는데, 이해 원찰(願刹)인 벽란강(碧瀾江)의 보달원(普達院)에 다리를 놓는 공역(工役)을 독려하기 위하여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가 있다가 최충헌(崔忠獻)이 보낸 한휴(韓休)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의민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부려 자기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으면 죽이고, 왕의 폐희(嬖姬)마저도 협박하였으나 왕이 벌하지 못하였다. 이의민의 여러 아들 가운데서도 이지광(李至光)과 더불어 횡포가 더욱 심하여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을 쌍도자(雙刀子)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