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정 ()

서예
인물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칭
이칭
정오(靜吾), 청선(聽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8년(선조 21)
사망 연도
1650년(효종 1)
본관
여주(驪州)
주요 관직
춘추관 편수관|성천부사(成川府使)|영흥부사(永興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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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오(靜吾), 호는 청선(聽蟬)이다. 이지정은 조선 전기의 초서 대가인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75 이후)의 서풍을 사숙하여 초서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생애

이지정은 광해조에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에 봉해진 이상의(李尙毅)와 윤현(尹晛)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4남으로 태어났다. 1616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의금부도사를 초임으로 병조·예조 좌랑, 춘추관 편수관 등의 여러 내직을 거쳤으나, 인조반정 이후로 대북(大北) 세력이 정권에서 축출됨에 따라 주로 외직을 전전하며 안산(安山)·이천(利川)·영흥(永興) 등 7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사위 이계(李烓)가 명(明) 상선과 밀무역한 죄에 연좌되어 1642년(인조 20) 성천부사(成川府使)직에서 파직당한 뒤 충남 아산에 인접한 계두리(鷄頭里)에 거처하며 아산에 유배 온 이민구(李敏求)와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또한 아산 공세리 서호(西湖) 가운데 조그만 정자를 지어 ‘청선(聽蟬)’이란 편액을 걸고, 이를 자호로 삼아 한묵(翰墨)으로 자오하며 여생을 즐겼다. 이민구가 1647년(인조 25)에 사면되어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이지정과 이별의 모임을 가졌을 때 남긴 「취영구절」이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년)에 영흥부사(永興府使)에 임명되어 발령지로 떠났다가 이듬해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지정은 어린 시절 형제들과 허목(許穆)과 함께 정언눌(鄭彦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편, 신라에서 조선 중기까지 역대 명필의 필적을 수록한 『대동서법(大東書法)』을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이지정은 여러 서체 가운데 유독 초서를 좋아하여 현전하는 필적도 대부분 초서이다. 명나라 장필(張弼)을 수용한 황기로의 초서풍을 사숙하여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글씨는 황기로에 비해 필획의 비수(肥瘦) 변화가 두드러지며, 감필법(減筆法)으로 쓴 간결하고 굳센 필획이 큰 특징을 이룬다.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듯 오광운(吳光運)은 그의 글씨가 “10섬의 무게가 나가는 굳센 쇠뇌와 같다.”고 하였고, 허목은 “필법이 기궤(奇詭)하여 고기(古氣)가 더욱 드러난다.”고 평하였다. 현전하는 대표작 「두보시 거촉(杜甫詩 去蜀)」에 위의 평가가 잘 표현되어 있으며, 지기 이민구와 뱃놀이하며 남긴 〈취영구절〉에도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이 밖에 『대동서법』과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 등의 법첩에도 그의 필적이 모각되어 실려 있다.

이지정의 서풍은 종질인 이하진(李夏鎭), 이하진의 아들 이서(李漵)·이익(李瀷) 형제, 손녀사위 이명은(李命殷) 등 후손들에 의해 가전(家傳)되었으며, 이서에게 서법을 전수받은 남하행(南夏行)에 이르러서는 이지정의 서풍과 함께 초서 명가들의 서풍이 혼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참고문헌

「청선 이지정(1588∼1650)의 서예」(유지복, 『서예학 연구』 10, 2007)
집필자
유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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