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이집트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이며, 해안선 길이가 2,450㎞이다. 면적은 100만 1450㎢, 인구는 8848만 7396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카이로(Cairo)이다.
국민의 97.6%가 이집트인이며, 나머지는 그리스인과 이탈리아인이다. 언어는 아랍어를 쓰고, 종교는 90%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고, 콥틱교 9%, 기독교 1%이다.
산업은 농업이 주이고 식료품가공·방직·석유산업이 활발하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849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250달러이다.
정부 형태는 임기 6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이슬람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6년의 상원(264석)과 임기 5년의 하원(454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국민민주당(NDP)을 비롯하여, 알·카드당, 민주연합당, 낫셀아랍민주당, 사회정의당, 사회주의노동당, 사회주의자유당 등이 있다.
이 지역은 나일강을 따라 고대문명의 발상지였으며 7세기 이후 이슬람문화권에 편입되었으나 18세기부터는 프랑스·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22년 2월 28일 영국에서 독립하여 왕국을 세웠으나 1952년 7월 쿠데타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부터는 비동맹주의,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경제정책을 실시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호개방과 친서방 접근에 따른 자본주의경제체제로 전환되었다. 1971년 헌법을 제정하여 1980년 개정하였다
대외정책은 우경중립의 비동맹중립외교를 펴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4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의 적대관계 청산이 이집트 외교의 최대 과제이며, 4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는 동안 이 나라의 군대는 아랍권에서 최강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12월 이래 이집트와 영사관계를 맺어오다가, 1995년 4월 13일 대사급 관계로 격상하였다. 양국은 1968년 8월에 문화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85년 6월에 전력기술 협정, 1996년 3월에 무역 협정, 2001년 8월에 원자력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2006년 3월에는 투자협력 양해각서, 수출보험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한 바 있다. 이처럼 양국은 실질협력관계를 증진하여 왔으며, 1976년 이래 건설업체가 이 나라 건설시장에 진출하여 한국기업의 성가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 이집트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5억 3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 자동차부품 등이며, 수입액은 10억 1000만 달러로 나프타, 천연가스 등이 주종목이다.
건설 진출은 1976년 6월 동산토건이 1,500만 달러 상당의 엘살람호텔건축공사를 수주하면서 시작되었으며, 뒤이어 대림산업·대림엔지니어링 등이 진출하여 1987년 3월의 경우에는 10건의 공사에 1억 2000만 달러의 수주고를 기록하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85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POSCO, LG전자, 금호타이어, 삼성전자, SK, 한국타이어, 두산건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현대건설, 현대상사 등 47개의 업체가 진출해 있다.
그밖에 한·이집트친선협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교민 약 933명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63년 8월 24일 이집트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상호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으며, 카이로에 문화원을 두고 있다. 양측은 1957년 12월에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58년 11월에 문화 협정, 1969년 4월에 문화교류 협정과 과학기술 협정, 1969년 5월에 군사원조 협정, 1996년 2월에는 해운협력 협정, 1997년 8월에는 투자보장 협정, 2000년 3월에는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0년 3월에는 보건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2001년 3월에는 문화교류통계서를 작성하였다.
통상면에서는 1990년 대 북한 수출 404만 달러(인광석·원면·의약품), 수입 240만 6000달러(철제품·어류)를 기록하였으며, 2007년 현재 북한이 펄프·직물·플라스틱제품 등을 수출하고, 알루미늄제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이집트의 대남북한관계는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이 이집트를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친북한성향을 보였으나, 1980년대부터는 대한 관심의 증대와 실질교류의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