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06cm이며, 각 면의 너비 29㎝.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불교를 제창하다 527년(법흥왕 14)에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백률사석당기(栢律寺石幢記) 또는 이차돈공양비(異次頓供養碑)라고 부르기도 한다. 1914년 사지로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석당은 화강암제의 육면 기둥으로 방형의 석재 윗면을 육각형의 복련(覆蓮)으로 새긴 대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원래 당위에 옥개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제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을 부조하였다. 제2∼6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각 정간에 자경 3㎝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 각 면의 명문은 마멸이 심하여 절반 정도만 판독된다.
그러나 명문의 대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미루어 알 수 있으며, 특히 명문 중의 “頸中白乳一丈(경중백유일장)”은 이들 기록과 합치되고 있다.
또한, 이 석당기를 목판에 새긴 법첩(法帖) 2종 『흥린군신각금생서(興隣君新刻金生書)』·『원화첩(元和帖)』이 전래하여 마멸된 부분을 더욱 보충하게 되었다. 명문 중에는 건립연대라고 고증할만한 확실한 연호나 연도는 없다.
단지 『삼국유사』 권3 염촉멸신조(厭觸滅身條)의 기사에 의하여 건립연대를 당 헌종 원화(元和) 12년(헌덕왕 9, 817)으로 추정한다. 또한, 명문에는 석당기의 찬자(撰者)·서자(書者) 모두 밝혀져 있지 않다. 정간선을 긋고 그 안에 글씨를 썼는데 전체적으로 서체는 해서지만 예서의 필의(筆意)가 담긴 획들이 많은 독특한 글씨다.
한편, 제1면의 화상(畵像)은 당대의 조각연구 및 복식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