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오(省吾), 호는 동이(同異)·이동포(李東圃). 덕천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 정종의 10남)의 6대손이며, 김해부수(金海副守) 이간(李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참판 이수남(李壽男)이고, 아버지는 이구(李球)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로 김여흘(金汝屹)의 딸이다.
1627년(인조 5)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전적을 거쳐 호조·예조·병조의 좌랑이 되었다. 1630년에 정언이 되고 이어서 충청도도사·성균관직강·시강원문학을 거쳐, 지평이 되어 훈귀(勳貴)들의 횡포를 탄핵하여 풍속과 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다.
직산현감과 안변·안동의 부사를 역임한 뒤 호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장례원판결사·병조참의·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사임하여 고향에 돌아가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학문이 깊었으며 특히 성리학에 밝아 ‘기일원론(氣一元論)’에서 ‘심무체론(心無體論)’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보곤론(補袞論)』·『상례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