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룡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해룡이 가난과 같은 현실 문제로 인해 효를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효도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 결과 부귀영화라는 보상을 받는다는 내용의 윤리소설이다.
1권 1책. 한글 필사본(筆寫本) · 목판본(木版本) · 활자본(活字本). 20여 종의 필사본과 2종의 목판본, 5종의 활자본이 있다. 활자본의 경우, 1926년 회동서관(滙東書館)에서 간행한 『육효자전(六孝子傳)』의 제2회에 실려 있는 것과, 1916년에 광동서국(光東書局) · 박문서관(博文書館) · 한성서관(漢城書館)에서 발행한 「심부인전(沈婦人傳)」이 주목된다. 특히 「심부인전」은 『증상연정심청전(增像演訂沈淸傳)』이라는 책에 「심청전(沈淸傳)」과 함께 실린 것으로, 이해룡의 부인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 내용이 같다.
영종 원년(元年) 낙양(洛陽)에 이경회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이름나고 훌륭한 집안의 후예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 장씨 부인과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남편에게 숙녀를 얻어 자식을 얻도록 청한다. 그러자 그날 밤 장씨 부인의 꿈에 선관(仙官)이 나타나, 전생에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살해하여 자식이 없었으나 이제 효성이 지극하므로 자식을 점지하여 준다고 하였다. 이경회는 이렇게 얻은 아들의 이름을 해룡이라고 지었다.
해룡이 8세 때, 아버지 이경회는 해룡에게 부귀를 얻어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해룡이 이경회를 선산(先山)에 모시고 삼년 동안 시묘하다 보니, 집안의 재산이 탕진되었다.
해룡은 성장하여 장원급제하고 심 현령(縣令)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아내는 구걸하고, 해룡이 나무를 하며 노모 장씨의 방을 따뜻하게 했으나 결국 노모는 죽었다. 부부는 자신들을 진사댁 종이라 속이고, 오홍대감의 종으로 몸을 팔아 노모의 장례를 치렀다.
어느 날 예전에 해룡의 종이었던 만득이 찾아옴으로써 해룡 부부의 정체가 드러나자, 오홍대감은 해룡을 양자로 삼고 왕에게 이 사실을 상소하였다. 왕은 장씨 부인의 장례를 왕실의 예로 치르게 하고 해룡에게 벼슬을 내렸다. 해룡은 결국 재상(宰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만년에 오홍대감 부부가 죽자, 해룡은 오홍대감 부부의 장례를 극진히 치르고 삼년 동안 시묘하였다.
효열계 영웅소설(英雄小說)인 이 작품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통한 효의 실현에 중점을 둔 윤리소설(倫理小說)이다. 상을 치르는 것[治喪]은 해룡 아버지의 죽음, 해룡 어머니의 죽음, 해룡의 양부모인 오홍대감 부부의 죽음이라는 일련의 소재가 되어 작품 전개의 처음 · 중간 · 끝을 이룬다.
장례를 통한 효행의 실현을 통해, 해룡의 덕성(德性)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이에 따라 해룡에게는 재상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는 공명 획득의 길이 열린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전형적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권선적 소설이다.
이는 충(忠)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권선적 소재와 징악적 소재의 대립과 갈등으로 전개되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또, 해룡의 부인이 겪는 가난과 고통이 그가 전생에 저지른 죄의 대가임을 제시하는 태몽은 적강소설(謫降小說)의 구조를 꿈속의 소재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효자가 어버이의 장례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효자 자신이 재상가에 팔리거나 아내 등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장례를 치르는 매신치상형설화(賣身治喪型說話)는 「이태경전(李泰景傳)」 · 「청화담(淸華談)」 · 「부용전(芙蓉傳)」 등의 고전소설에서도 중요 모티프로 쓰이고 있으므로 이 작품과 상관성을 보인다.
특히, 「이태경전」의 전반부는 「이해룡전」과 거의 같으나 후반부는 이태경의 영웅적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로 볼 때, 「이해룡전」은 「이태경전」이 창작되는 데에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효 이념과 현실 문제의 충돌을 다루면서,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효의 실천이 어려운 상황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해룡은 현실 문제로 인해 효 이념을 버리거나 효를 실천하는 데에데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 작품에서 현실 문제는 효에 관한 문제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으며, 효는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실천해야 하는 규범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