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중(大中), 호는 약포(藥圃)·경재(敬齋). 광양현감 이맹희(李孟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천군수 이창형(李昌亨)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이탁(李鐸)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종번(李宗蕃)의 딸이다.
1563년(명종 18)에 생원으로 알성 문과에 급제하여 곧 검열에 등용되고, 이어 설서·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그 뒤 응교·동부승지·호조참의·대사간·병조참의·공조참의를 역임하고 1582년(선조 15)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서인으로 1583년에 도승지가 되었으나 동인에 밀려 여주목사로 좌천되었다. 1587년에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대사간이 되고, 다시 여주목사로 밀려났다. 그해 서인 정철(鄭澈)이 세자책봉 건의 문제에 연루되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왕을 의주로 호종하였다. 이어 대사간이 되었다가 1594년에 대사성을 거쳐 부제학에 이르렀다. 성격이 강직·단아하고 특히 시와 예서에 뛰어났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약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