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건평 230㎡쯤 되는 본체 기와집과 조각정(組閣亭) 등 부속건물로 이루어졌다.
이승만(李承晩)이 망명지인 미국으로부터 광복 직후 귀국하여 이곳에 살면서 대한민국 국회의 초대의장에 당선되고, 이어서 초대대통령에 당선되어 이곳 조각정에서 초대내각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내력에 바탕하여 ‘이승만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신광한(申光漢)의 옛 집터로 일명 신대(申臺)라 하였는데, 이화장 정문 앞에는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석양루(夕陽樓)가 있었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제택조에 “인평대군의 집은 건덕방 낙산(駱山) 아래에 용흥궁(龍興宮)과 동서로 마주 대하고 서 있는데 석양루가 있다. 기와·벽 등에 그림이 새겨져 있고 또 규모가 크고 화려해서 서울 장안에서도 으뜸가는 집이었다. 지금은 장생전(長生殿)이 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이 장생전은 이화장 조각 당시에도 그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이화장 뒷문 개울가 바위에 신대를 기념하는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는 큼직한 각자가 1960년대 초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땅에 묻혀 있다.